리코더가 좋다.

8살에 피아노, 13살에 바이올린을 배웠다. 피아노는 학원에서 두어달 배웠는데 그 짧은 배움 동안 ‘아, 이건 나한테 안 맞는다’ 하는 느낌이 왔다🎹 젓가락 행진곡과 고양이의 춤을 마스터하고 나서 피아노는 안뇽:) 했다. 바이올린은 교회에서 토요일마다 한 시간씩 알려주셨는데 연습하러 가기 너무 싫어서 바이올린 케이스를 마구 흔들면서 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매주 예배시간 찬송가 반주하고 성가대 반주 했지만 바이올린과의 사귐은 거기까지였다.
반면 초등학교에서 배운 리코더는 사춘기를 겪는 내게 큰 위로가 되어줬다. 음악시간에 가볍게 배운 리코더가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가볍고, 어디든 가져갈 수 있고, 어떤 음이든 낼 수 있는 리코더는 표현하기 어려운 답답함에 외로웠던 내 어린 날 친구 같았다. 좋아하는 곡을 리코더로 더듬더듬 불어서 연주할 때면 대단한 연주가가 된 느낌이 들었다.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는 용돈을 모아 문방구에서 파는 소프라노 리코더 중에 제일 고가인 무려 ‘엔젤’ 리코더를 샀다. 리코더 교본까지 사서 혼자 방에 틀어박혀 한 곡씩 익혀갔다. 소프라노 리코더만으로는 만족감이 들지 않아 용돈을 몇 달이나 모아서 무려 만원이나 했던! 알토 리코더까지 사서 연습했다:) 그 누구도 시킨 사람이 없는데 혼자 신명나게 불어제끼면서 한 곡씩 마스터해 가는 성취감도 느꼈다.
이런 내게 리코더 연주를 다른 분들에게도 들려드릴 기회가 왔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합주부에서 작은북을 연주했는데 합주부 담당 선생님이 내가 사는 시의 ‘청소년 리코더 합주단’ 단장님이셨다. 선생님은 리코더 사랑이 남다른 분이셨고 덕분에 합주부에는 이미 리코더 합주단에 소속된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합주부실에는 소프라노, 알토 리코더 뿐만 아니라 구하기 어려운 테너, 베이스 리코더까지 있었다. 나의 남다른 리코더 사랑을 알아봐주실 분 앞에서 난 여과없이 리코더 솜씨를 뽐냈고 합주단 제안을 받았다!
우리 초등학교만이 아니라 다른 학교 아이들도 같이 참여하는 규모 있는 리코더 합주단이었고, 정기적으로 연주회도 아는 나름 큰 합주단이었기에 선생님의 제안에 엄청 신났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현실은 늘 상상처럼 흘러가지 않는 법이지. 엄마가 반대하셔서 부풀었던 꿈은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주일에 연습하러 가야하기도 해서 안된다고 하셨었는데 지나고 보니 입단 회비 때문이었던 것 같다ㅠㅠ
하지만 나의 리코더를 향한 열정은 멈출 줄 몰랐고 자라면서도 종종 마음이 답답해질 때면 혼자 방 문 닫고 들어가서 리코더 한참 불다 나오곤 했다. 리코더 불면 왜 마음이 편안해지나 생각해봤는데 그것도 하나의 호흡하는 과정이라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 내게 리코더를 연주할 기회가 갑자기 찾아왔는데!! 이번 여름 교회에서 대만선교를 준비하며 아이들과 함께 리코더 공연을 하게 된 거다. 아이들은 소프라노 리코더를 두 파트로 나누어 연주하고, 어른들은 소프라노, 알토, 테너 리코더를 연주했다. 오랜만에 테너 리코더 불게 되어 기뻤고, 선교 가기 전 두 달 동안 연습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한 음 한 음 짚어가며 숨을 내뱉고 들이쉬는 것에 집중하는 순간이 참 좋았다.
선교 이후 다시 리코더를 불곤 한다. 잊고 있던 즐거움을 다시 찾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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