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좋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케이팝이 좋다.

부모님은 꽤나 보수적이시고 엄격하셨다.
연세 드시고 조금 달라지시긴 했지만 나의 유년기엔 좀 많이 그런 편이셨는데
주일에는 돈 쓰지 않기, 공부하지 않기 기타 등등 우리 가족만의 규칙 중 하나가
가요 부르기는 물론 듣기까지 금기시 하는 것이었다.
그 규칙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던 두 남동생과는 다르게
안타깝게도 내 DNA 속에는 노래를 좋아하는 속성이 아주 진하게 흐르고 있었다.
나중에 얘기 나눠보고 알았는데 엄마쪽 유전자다.
찬양을 부르고, 율동을 하고, 성가대를 섬기고, 학교에서 합창부를 하면서도 나는 계속 듣고 싶었고 부르고 싶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1990년대의 가요. 얼마나 찬란한가!
그 비트, 그 안무, 그 가사를 보고 들으면서 어떻게 안 따라부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나는 애써 모른척 했다. 혼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엔 길거리에서 불법복제 테이프를 파는 상인 분들이 스피커로 가요를 크게 들었고
텔레비전에서는 똑같은 노래가 몇 달동안이나 유행해서 흘러나오곤 했었다.
그리고 나는 신문에서 TV편성표를 체크하고 시간 맞춰 채널을 돌려대던 아이였기 때문에
(참 신기하게 TV보는 건 별다른 통제를 하지 않으셨다. 감사할 따름입니당ㅎㅎ)
가요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다른 프로그램에 섞여 나오는 가요를 듣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안 들으려고 해도 신명나는 멜로디는 내 고막을 뒤흔들었다.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 무대가 너무너무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가요톱텐 방영 시간을 기다렸다가 엄마아빠가 안 계신 틈을 타 얼른 봤던 순간 온몸을 뒤흔들었던 전율을 잊을 수 없다!
자라나면서 내게 보고 들을 통로들이 하나씩 늘어났다.
초등학생 시절, 수련회나 수학여행을 갈 때 전세버스를 타고 몇 시간씩 오갔는데 그때 버스에서 같이 부르기용으로 ’최신인기가요‘ 가사집을 나눠주셨었다! 할렐루야!
악보집이 아니라 제목, 가수, 가사만 적힌 가사집이었지만 당시 내겐 보물 같았다.
다들 시큰둥하게 받아들던 작은 소책자는 여행 다녀와서도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활용됐다.

나의 비밀스런 가요사랑은 중학생이 되면서 무한대로 확장됐다.
가요방송을 통으로 녹화 떠와주던 고마운 친구들 덕분에 교실에서 맘 편히 무대를 감상했다. 만세!
열다섯 어느날, 배우 C군께 입덕했는데 그 분이 진행하시던 ‘FM인가가요’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극적으로 여수에서도 방송된 덕분에 매일 라디오를 듣는 삶을 살게 됐다.
(보통 여수에서 자체제작한 지방 방송이 주파수를 탔었는데 그 시간엔 공중파가 방송된 거다. 운명. 운명이었다ㅋㅋㅋ
나의 덕질 역사는 조만간, 언젠가, 기회가 되면 쓰겠습니다..너무 길어요..네에..)
당시엔 다시듣기 라는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본방사수!를 꼭 해야만 했다.
밤 10시부터 12시까지 무려 2시간 동안 방송 되는 라디오 프로그램 들으려고 9시 넘으면 졸린 척 연기하고 내 방에 들어가서 자는 척 하는 수고를 곁들여가며 들었다.
라디오 청취가 가능한 유일한 기기는 휴대가 간편한 워크맨이나 CD플레이어가 아닌 누군가에게 물려받은 어학기였는데 크기는 물론이고 부피까지 어마어마했고, 주파수 찾으려면 아주 섬세하게 버튼을 돌려야 했고, 어마어마한 헤드셋을 써야했지만 나는 들키지 않고 해냈다.
보통의 라디오 프로그램처럼 멘트와 음악, 광고가 적절하게 버무려져 흘렀는데 심지어 ‘FM인기가요’였으니 2시간동안 유행하는 가요는 몽땅 다 들을 수 있었다.
가요금지를 어기기엔 죄책감이 들어 멘트 듣다가 노래 나오면 다른 주파수 틀고를 반복하기 여러 달.
밤에 몰래 자는 척하면서 주파수를 바꾸기는 결코 쉽지 않았고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 들어버렸다.
정신 차려보니 C군이 라디오 DJ하차하고 나서도 계속 라디오를 듣는 사람으로 무럭무럭 자라나 있었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신청곡을 위주로 방송되긴 하지만 홍보 수단으로도 이용되다보니 비슷한 곡이 자주 나왔고 나도 모르게 당시 발매된 거의 모든 가요를 다 섭렵했다.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미리 준비해둔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 버튼을 눌러 좋아하는 곡만 담긴 나만의 믹스테이프를 여러 개 만들기도 했다.
아빠가 사놓고 안 쓰시던 워크맨은 자연스레 물려받고^^; 간편성까지 생긴 나를 막을 사람은 없었고, 10시 프로그램은 물론 12시, 심지어 새벽 2시에 신해철님이 진행하던 ‘고스트 스테이션’까지 듣는 열혈청취자가 됐다.

노래를 듣는 사람이 부르는 사람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일듯 싶다.
하지만 노래방은 내게 엄청난 탈선의 장소로만 느껴졌고 차마 갈 수 없었다.
혼자 흥얼거리는 게 최선이었던 내게 중3, 또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부모님이 노래방 운영하시는 친구가 생일파티를 노래방에서 연 거다!!
뭔가 대단한 잘못을 한 기분이 들어 금방 나왔지만
“이게 뭐지?” 싶은 표현하기 힘든 엄청난 해방감이 들었다.
처음만 힘들지;) 그 다음부터 친구들이랑 놀 때 노래방은 거의 필수코스가 됐다.
이 글 절대 보실리 없는 엄마아빠!
친구들이랑 놀고 왔는데 왜 이렇게 목이 다 쉬었냐고 물어보시면 수다를 너무 열심히 떨었다고 했었는데..
목 터져라 노래 불러서 그랬어요!! 거짓말 해서 죄송해요!!!!!

고1, 운명처럼 만난 노래방 메이트 친구 덕분에 고딩 시절엔 한 달에 한 번씩은 토요일마다 노래방에 갔다.
1. 시내에 있는 단골 노래방에 가서 사장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2. 노래방 책자를 펴고 ㄱ부터 ㅎ을 지나 최신곡에 이르기까지 부르고 싶은 노래를 고민없이 마구 누른다.
3. 친구랑 나랑 노래 취향이 비슷해서 부르고 싶은 곡이 나오면 같이 부르거나 한 명이 부르거나 한다.
4. 우리는 1시간 비용을 내지만 사장님이 서비스 시간을 1시간 더 주신다.
5. 2부터 4까지 반복. 계속 반복.
손님이 별로 없는 시간대라서 그랬는지 우리를 어여삐 여겨주셔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사장님은 우리가 목이 다 쉬어 나올 때까지 무한대로 서비스 시간을 넣어주셨다.
누가 이기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계속 불러댔지만 우리가 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우리가 너무 신나게 불러대서 구경도 오셨던 노래방 사장님
이름 기억해주시고 ”봄봄이 왔냐?“하면서 따뜻하게 맞아주시고ㅋㅋㅋ
씨원하게 노래 뽑고 나오면 ”봄봄이 이상은 노래도 아냐~?“ 하시고 왜 벌써 나왔냐며 더 부르라고 해주셨던 정 많으신 사장님ㅎ
서울로 대학 간다니 ”아쉬워서 어쩌냐“ 하셨는데
몇 년 후 방학 때 노래방 메이트 친구랑 갔더니 다른 사장님으로 바뀌어 계셔서 인사 못 드린게 아쉽다ㅠㅠ
여수 교동 시내 대궁 오락실 근처 노래방 운영하셨던 사장님!
“봄봄이 아버지는 뭐하시냐?” 물으셨지만 차마 우리 아빠 목사님이에요 하고 대답할 수 없었어요😅
사실 그만 두시기 전에 아빠랑 저랑 새벽기도 가는 길에 퇴근하시는 사장님 부부와 마주쳤었어요!
그게 마지막인줄 알았으면 인사 드렸을텐데(아님) 인사 못 하고 다른 길로 갔어요.. 죄송해요..
서비스 시간 많이 넣어주시고 음료수도 주셔서 감사했어요!!!
사장님 덕분에 답답했던 제 학창 시절이 살만 했습니다요!! 감사합니다!!!!!

요즘엔 코인노래방에 혼자 가곤 한다.
시간으로 결제해서 1절만, 템포는 적당히 빠르게 조절해서 와랄랄라 부르고 나면 속이 시원해진다.
그냥 듣는 거랑 따라 부르는 거랑 노래방에서 에코 빵빵한 사운드로 가사말 곱씹으면서 부르는 건 천지차이다!
한참 힘들던 몇 년 전, 이하이 ‘홀로’, 아이유 ‘셀러브리티’ 부르다가 오열하고 맘이 편안해졌었다.
‘아, 노래방 갈 때 됐구나’ 싶을 때 꾸는 꿈이 있다.
모니터 한 쪽 구석에 적힌 이용시간은 줄어드는데
리모컨으로 부르고 싶은 노래를
아무리 검색해도 다른 곡이 나오는 꿈.
끝없이 제목 검색하고, 가수 검색
무한반복으로 하다가 깨는 꿈.
그 꿈 꾸면 내 무의식이 노래방 가라고 부르는구나 싶다.
쿨타임 진작 찼다. 조만간 한 번 가야겠다, 노래방. 나만의 파라다이스.
노래방은 못 간지 오래 됐지만
얼마 전 야외 페스티벌 가서
시원하게 불러제끼고 왔지🎵
그랜드민트페스티벌에서 만난 페퍼톤스님들:)
정말 좋아하는 노래 라이브 무대 공유합니다🎶
가사가 참 예뻐요🥰
답답한 것들은 던져버려 여긴 정말 한적하다
햇살엔 세금이 안 붙어 참 다행이야
오늘 같은 날 내 맘대로
저기 어디쯤에 명왕성이 떠있을까
(모르겠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잔디에 누워
우주의 끝을 바라본다
하루쯤 쉬어도 괜찮지
오늘 당장 모든게 변하진 않을테니
세상은 넓고 노래는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
인생은 길고 날씨 참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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