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좋다.
할머니와 함께 자랐다.
내가 3살 무렵, 첫째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엄마는 고등학교 화학 선생님으로 근무하셨다. 바쁜 아빠와 엄마 대신 할머니는 내 주양육자가 되어주셨다.
아빠는 8남매의 막내신데 내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는 70살이셨다. 일흔의 할머니는 새벽 4시에 일어나셔서 하루종일 집안일을 하시면서 신생아인 나까지 돌보셨다.
기억 속 할머니는 항상 바쁘셨다. 계속 쓸고 닦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셨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내게 사랑을 쏟아부어주셨다.
할머니는 하루종일 텔레비전을 틀어두시는 티비 러버셨는데 덕분에 나도 CF를 달달 외우고 드라마 편성표를 할머니께 알려드리는 어엿한 티비 러버로 성장했다.📺
할머니와 나 사이엔 특별한 끈끈함이 있었다.
월남전 참전 후 트라우마로 알콜 때문에 힘들어하시던 큰큰아버지가 계셨다. 당시 내가 너무 어려 자세한 서사는 모르지만 술로 인해 친가 가족을 힘들게 하셔서 친척들과 연을 끊고 지방에서 살고 계셨다는 정도만 기억한다. 할머니에겐 그 분도 소중한 자식이었겠지.
가족들 몰래 알아내신 그 분의 연락처를 수첩에 적어두셨다가 아빠엄마가 수요예배 드리러 집을 비우시면 내게 전화 걸어달라고 부탁하셨다. 할머니는 한글을 모르셔서 초등학생인 나는 할머니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비밀친구였던 거다. 매주 이뤄지던 통화는 할머니가 하늘나라 가시기 전까지 부모님께 비밀로 지켰다.
할머니 통장 비밀번호도 나한테만 알려주셨었단다🥹
이른 새벽 갑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지시던 때도 날 제일 먼저 깨우셨다. 부모님은 새벽기도 가셔서 안 계셨는데 할머니가 머리가 아프다고 날 깨우셨고, 급하게 연락 드려 오신 부모님께서 병원으로 모시고 갔지만 할머니는 몇 달을 버티지 못하시고 소천하셨다.
‘사랑’을 떠올리면 할머니가 바로 생각난다.
열 살에 헤어졌지만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할머니. 할머니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할머니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인지 난 할머니가 좋다.
결혼하고 남편의 친할머니와 같은 건물 다른 층에 살았는데 가끔 고집 부리시곤 했지만😅 그 모습 마저도 사랑스러웠다. 아이들 태어나고 왕할머니라고 불렀는데 몇 년 전 소천하신 왕할머니도 보고싶네!
나도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할머니가 되겠지?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 게 내 꿈이다.
우리 할머니, 왕할머니처럼 귀여운 할머니가 될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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